[경일춘추]신종 품앗이

이정희 (시인 프리랜서)

2021-10-25     경남일보



‘품앗이’는 이름도 예쁘지만 그 내용이 더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품’과 ‘앗이’의 합성어로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는다는 말’이다. 품꾼은 품삯을 받고 일하는 놉(일꾼)이지만 품앗이는 금전거래가 아닌 ‘노동력의 교환’이다. 그렇기에 인간미가 진하게 배여 있다.

예전의 우리 농촌사회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사일은 품앗이로 해결했다. 골목에는 개구쟁이들로 활기가 넘쳤고 들에는 덩치 큰 장정들로 논이 좁았으며, 콩·고구마 밭에는 여인들의 수다가 밭고랑을 타고 다녔다.

그러나 지금의 농촌은 눈을 닦고 봐도 꼬맹이 하나 없다. 오직 황금들판에는 외로운 콤바인이 ‘품앗이가 뭐냐’는 듯 굉음을 내고 돌고 있다. 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묵정밭의 허수아비는 사람 구경을 못해 산새들과 들짐승의 노리개가 된지 오래다. 그곳은 눈물과 콧물이 배여 있고 웃음과 희망이 넘쳐났던 곳이 아닌가. 서로의 밭을 오가며 호미로 지심(김)을 매다가, 막걸리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면서 힘든 노동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때로는 알토란같은 자식들이 애를 먹인다거나, 모진 시어미의 시집살이가 고달프다거나 웬수같은 남편이 한눈을 판다면서 신세타령을 했다.

여인네들의 고된 삶의 스트레스는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졌고, 희망으로 다시 일어섰던 그 동력이 바로 ‘품앗이’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품앗이가 이젠 ‘댓글 품앗이’로 바뀌었다. 논밭에서 벗어나 각종 SNS에서 댓글로 품을 주고받게 되는 시대로 변했다. 가령 내가 댓글을 남기면 저는 답글을 달아야 하고 또 댓글도 줘야 한다. 그래야 팔로우 관계가 유지되어 랜선의 정(情)이 오고 간다. 이런 랜선 품앗이는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가 많다. 농촌 품앗이는 육체적으로는 피곤했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로는 건강했다. 하지만 랜선 품앗이는 무척 힘들다. 답글을 달지 않으면 무시한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고 얼굴이 없다는 핑계로 악플도 달릴 수 있다. 혹자는 악플(惡-reply)이 무플(無-reply)보다 낫다고 말을 하지만 아닌 것 같다. 정신을 해치거나 하등의 도움도 안 되는 말, 또는 어디서 복사해서 이어붙이는 기계적인 댓글은 정말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 오히려 무플이 나은 것 같다. 진심 어린 선플(善-reply)로 댓글 품을 주고받자. 이제는 건강한 신종 품앗이로 랜선을 기름진 밭으로 바꾸어야 할 때다.

이정희 시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