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41] 미안해요 (조혜경 시인)

2021-11-04     경남일보


저버리다와 져버리다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당신 곁에서



인생 한 짐이 쓰레기라고

말해주지 않아



고맙고 미안해요

-조혜경 시인의 ‘미안해요’



그렇지. 중요한 것은 ‘당신 곁’에 있는 일. 그런 다음에라야 관계가 생성되는 법이니.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해요. 당신과 한 약속을 저버려서 미안해요. 그런데도 저와의 삶이 한 짐 쓰레기라고 말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당신에게 짐이 되어서 미안해요.

‘저버리’는 일, 참 슬픕니다 라고 하는 의미겠다. 지는 낙엽을 묵묵히 받아내는 쓰레기통과 당신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감사하므로. 젊어서는 결코 알 수 없으며 시간만이 알게 하는 일들이 있다. 쓰레기통 옆 얼마 남지 않은 잎을 달고 있는, 나무 같은 상황이 되어서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저버리다와 져버리다 사이는 멀지만 감각하는 슬픔은 유사하다.(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