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42]낙엽이 가는 길 (이비단모래 시인)

2021-11-11     경남일보


가장 낮은 곳에서 발등 시릴까

온몸 던져 덮었네

썩고 썩어

그대 발 속 스며들어

힘차게 봄 걸어 나올 수 있게



-이비단모래 시인의 ‘낙엽이 가는 길’



중부 지방에 첫눈이 왔다는 소식이다. ‘갑자기’에 대하여 생각했다. 겨울이 갑자기 온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반계리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에 이르려면 며칠 더 있어야겠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엊그제다. 겨우 2, 3일 지났는데 비바람 불고 첫눈이 내렸다. 단풍이 절정에 달한 은행나무를 더는 볼 수 없다.

‘갑자기’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일 뿐, 나무는 시간에 공간을 가두는 일부터 서둘러야만 생장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 이 시기의 나무가 머금고 있던 물을 최소한만 저장한 후 내보내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러니 나는 시인의 낙엽에 관한 소고를 읽으며 나무를 먼저 읽는 셈이다. 겨울 지난 낙엽은 나무가 되어 있을 것임을 아는 일이기도 하겠다. 미리 준비하고 떠난 것들이 ‘힘차게 봄 걸어 나올 수 있’는 나무가 되는 일 아닌가.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