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64) 나비(송찬호)

2021-11-14     경남일보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 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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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으로 날아드는 나비를 보는 한낮입니다. 꿈속인 듯 아득하군요.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하는 것이 이생과 전생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날갯짓에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나비는 많은 이야기를 가졌어요. 그중 영혼의 다른 이름이라는 이미지는 나비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 같아요. 하지만 화자의 나비는 활달하고 거침없고 과감하네요. 여린 날개를 움직이기만 해도 순식간에 바람을 타는 율동이 황홀하기까지 해요. 이렇게 가벼운 날개로 꽃에서 꽃으로 흘러 다니는 나비의 유유자적이 꿈 같아요. 애초에 서두름을 모르니 도망은 더구나 알 수 없겠지요. 환상을 오가며 향기를 오가며 가로지르는 팔랑거림으로 보아 나비의 땅은 그늘이 아닌 것이 분명해요. 볕 바르고 바람 좋은 데서 꽃이 피어야 마땅할 곳임이 틀림없어요. 그런 곳에서 꽃과 꽃 사이를 누비는 나비는 누구 눈치를 볼 이유가 없겠어요. 수많은 눈이 있어도 꺼릴 것 없이 종횡무진하는 그의 삶은 산뜻한 비밀이겠어요. 환한 대낮에 꽃가루 옮기는 모습을 도둑으로 보는 화자의 시선에 눈을 맞추어 봅니다. 나비의 한가로움과 참으로 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