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임금명세서

한중기 (논설위원)

2021-11-17     경남일보
월급봉투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가 있다. 예순을 넘긴 이들에게 월급봉투는 곧 삶을 연결시켜주는 생활의 끈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월급봉투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존재였다. 그 속엔 희로애락이 담겨 있었다. 한 달 동안 땀 흘린 노고가 깨알 같은 숫자로 기록된 월급봉투를 받는 날은 가장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외상’ 갚고 ‘가불금’ 제하면 월급봉투는 늘 ‘쥐꼬리’만 했던 게 그 시절 대다수 월급쟁이들의 일상이었다. 월급이 계좌로 송금되는 시대로 변하면서 월급봉투는 이제 추억이 되었고, 언제부턴가 임금명세서마저 보기 힘들어 졌다. 법상 의무사항이 아닌데다 꼼꼼한 사람 아니면 잘 챙기지 않다보니 생긴 일이다.

▶내일부터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임금명세서를 반드시 줘야 한다. 5인 미만 영세 사업장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은 사용자에게 과태료를 매기도록 근로기준법이 개정됐다. 임금 체불시 사용자와 근로자간 다툼의 소지를 줄이기 위함이다. 지난해 체불액 1조 5800억 중 29인 이하 사업장이 82.2%나 된다.

▶임금명세서 의무화는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 사업자에게는 가혹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관계법이 강화된 데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영악화가 장기화 되는 상황에서 당장의 행정업무가 늘어나는 탓이다. 그러나 깜깜이 월급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