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44] 지문(최영욱 시인)

2021-11-25     경남일보


파도의 이랑을 쓰다듬다가

더러는

바다의 늑골까지도 퍼 담던 젊은 손이었을

저 빛나는 생의 기억

-최영욱 시인의 ‘지문’



디카시는 시문학이자 때로 기록물이 될 수도 있다. 한 아이의 성장기, 한 사람의 생의 기록을 디카시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메시지만으로도 가능한 일이지만, 그 기록은 의미를 생성하기보다 어떤 현장의 증거물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증거물에 기술이 아닌 시적 문장이 융합되었을 때, 예술적 미학을 띤 기록 작품이 된다.

디카시 ‘지문’의 오브제는 손이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일 수 있다. 그러나 손은 ‘생의 기억’을 담당해 온 총체적 기록의 대상이지 지문은 아니다. ‘젊은 손’이 바다의 이랑과 늑골을 거치는 동안 쌓였을 공간과 시간을 지문으로 읽어야 한다. 저 그물이 어부의 한 생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시간이자 지문이다.(시인·디카시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