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65) 지평선/막스자콥

2021-12-05     경남일보

 


그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








여백에는 얼마나 빼곡한 말이 들어있을까요. 어떤 말은 아껴야 할 때 빛이 나요. 일차원적인 감정이거나 보통명사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런 것이 전부라 여긴 적 있었지요. 그래요. 익숙한 것에 속으면서 모른 척한 적 있었어요. 생각이 귀찮았거든요. 생각이란 게 그렇더군요. 꼬리에서 꼬리를 물어야 하는 것에서 물기 시작하면 미로가 생겨 돌아 나오지 못할 지경이 되는 일 같은 것요. 참으로 번거롭고 까다롭지 뭐겠어요. 들은 말을 그 자리에서 잊어버리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싫은 성격 탓일 수도 있겠고요. 생각이 꼬이면 하나씩 풀어야 하는 습성 때문일 수도 있겠고요. 그런 게 무의미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좀 알겠어요. 굳이 말할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요. 여백은 자체로 빛이 난다는 것을요. 보이는 것이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은 것을 함의하는지 여백은 알아요. 하늘과 바다는 그 큰 입을 가지고도 말을 아껴요. 다만 맞닿은 부분에서 한 줄로 자신을 요약하죠. 강렬하게요. 삶이 이러면 좋겠어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그녀의 하얀 팔이 내 전부가 되는 건 아찔하지 않겠어요? 계절의 환절기 같은 걸 거예요. 분별할 수 없는 현실이어도 그러면서 수긍해 보는 겁니다. 누군가를 내 전부라 여기며 사는 건 꽤 괜찮은 일이니까요. 그리하여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모든 것이 되는 기적 같은 일을 해보기로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