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칼럼] 우리만의 동의어

2021-12-16     경남일보


대학 캠퍼스를 물들였던 가을 낙엽이 지나가고 학생들의 옷이 두꺼워지면, 새로운 계절과 함께 돌아오는 것이 있다. 2학기 기말고사다. 매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대학생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상·하반기의 각 4개월, 총 8개월을 캠퍼스에서 보내며 즐겁고도 고단했던 한 해를 정리하고, 연말의 풍족한 휴식을 기대하게 되는 시기다. ‘이것만 버티면’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이다. 그리고, 이맘때면 시작되는 나의 두 가지 말버릇이 있다. “이번 학기, 정말 열심히 살았다”, “종강하면 여행 떠난다”라는 문장이다. 특히, 두 번째 문장은 나만의 말버릇은 아닌 듯하다. 얼마 전, 학내 집단 면담으로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많은 학생은 학기 중 지친 일상을 얘기하며 방학 계획으로 ‘여행’을 꼽았다. 그러자 면담을 진행하시던 교수님께서는 희망 여행지를 질문하셨고, 학생들은 하나같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며 웃어넘겼다.

그러자 교수님은 “여행이라 하면,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게 있어 떠나는 것 아니냐”라며, “요즘 청년들은 쉬고 싶다는 말을 ‘여행 가고 싶다’로 대체하는 것 같다”라고 스치듯 말씀하셨다. 아주 짧은 대화였지만, 혼자 곱씹을수록 개운하지 않았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일상적 장면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식견을 쌓는 ‘여행’, 그것이 정말로 나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낯선 장소와 북적이는 관광지를 싫어하는 내가, 학기 말만 되면 다른 사람이 된 듯 외치던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였다. 미라클 모닝으로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한다는 동기, 대학시험도 모자라 각종 어학시험과 자격증을 따려 한다는 선배. 그들이 그리고 있는 멋지고 큰 그림에 비해, 휴식은 계획이라 하기에 초라한 것이었다. 그래서 “휴식이 필요해”라는 말 대신, “여행 가고 싶다” 따위로 얼버무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휴식 대신 여행을 말하고 다닌 것처럼, 모든 청년에게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기 부끄러워 그것 대신 사용하는 자기만의 동의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 동안 나름의 치열한 삶을 산 청년이라면, 이제 당당히 말해도 될 것이다. “지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여행 아닌 휴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