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야당이 ‘이나땡’에 정녕 담아야 할 것들

정재모 (논설위원)

2021-12-20     경남일보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판 전면에 나섰다. “좀 공개적으로 돕는 게 좋겠다”며 자당 후보 지원사격의 포문을 연 것. 지난주 출연했던 한 라디오 프로에서다. 그는 국민의힘 선대위부터 겨냥했다. 거기 합류한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민주당 정통성을 물려받은 적도 없을뿐더러 한번 물러난 분들이라 했다. ‘한물갔다’는 뜻이었다. 이들을 ‘오합지왕(烏合之王)’이라고도 했다. 김종인 김병준 김한길 박주선 같은 선대위원장들을 오합지졸로 조롱한 것이다.

국민의힘 측이 즉각 반응했다. ‘이나땡이올시다!’ 김철근 당대표정무실장이 한 말이다. 이나땡은 ‘이해찬이 나오면 땡큐’란 뜻이란다. 일테면 역(逆)조롱인 셈이다. 이해찬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이 국민의힘에 왜 땡큐일까.

이해찬은 지난해 8월까지 2년 간의 당 대표 시절 막말과 비하 발언 논란을 종종 일으켰다.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자들” “정치권엔 정신장애인이 많다” 는 표현들을 썼다. 2018년 12월 당내 장애인위원회 행사에서였다. 이에 장애인 비하라며 대표직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지난해 1월에도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또 ‘필리핀은 잘살던 나라에서 독재자 통치로 제일 못사는 나라가 됐다’는 말도 했다. 베트남 부총리를 만났을 때는 한국 남자들이 결혼 상대로 베트남 여자를 선호한다고 했다. 둘 다 외교적 관점에서 못 할 말이었다.

사실 그는 이런 막말 비하 발언과 버럭하는 성질 탓에 사람들의 비호감을 사고 있는 편이다. 여기에다 친문 폐쇄성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여겨져 왔다. 때문에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중도파들이 그를 싫어할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가 나서면 젊은 중도파가 국민의힘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당직자의 이나땡에 이어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은 “이비이락(이해찬이 날면 이재명이 떨어진다)”이란 말로 오합지왕에 응수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이해찬의 등판은 국민의힘에 바람직한 일이라고 이죽거렸다. 이런 반격들은 이 전 대표에 대한 사람들의 비호감도에 기댔을 거다. 그렇다면 그에게 다른 측면은 없을까.

이해찬 전 대표를 흘겨보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할 게 있다. 우선 그는 국회의원 7선의 선거 전문가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비례대표 5선이라면 그는 지역구에서만 7선을 했다. 장관과 총리도 지냈다. 무엇보다 친노·친문의 대부다. 그가 나서면 근래 좀 느슨해진 듯이 보이는 친문 그룹을 다시 결집시킬 거다. 야당에겐 비상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전면 등장에 즈음하여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정치 비평 활동을 재개했다. 또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 미국에 체류해온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최근 귀국해 민주당 선대위에 합류했다. 눈여겨볼 일들이다. 무엇보다 이해찬 전 대표는 21대 총선을 지휘하여 압승했다. 이래도 국민의힘이 짐짓 이나땡이라며 마냥 시시덕거릴 일일까.

이해찬은 전면 등장을 천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모두가 왕인 오합지왕의 국민의힘 선대위가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또 이런 말도 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50%라지만 그 중 윤석열 지지자는 60~70%에 불과하다. 정권유지 여론이 40%라도 이건 대부분 이재명 지지자이다.” 양쪽 지지가 총체적으론 엇비슷하다는 소리다. 제논에 물 대기 식의 교묘한 말 솜씨란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현재의 국민의힘 처지에 전혀 당치않은 궤변이랄 수도 없다.

이 전대표의 말에서 새길 만한 건 새겨 정신 바짝 차린다면 선거에서 밑질 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나땡은 국민의 힘이 고작 우스개로나 즐길 말이 아니다. 여기에 정녕 담아야 할 것은 겸허한 긴장과 스스로를 다잡는 결연한 의지일 거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