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이력서 논란

한중기 (논설위원)

2021-12-22     경남일보
‘발을 깎아서 신에 맞춘다’는 삭족적리(削足適履)란 말이 있다. 눈 앞의 이익에 눈 멀어 목적물을 해치는 어리석음을 이른 말이다. ‘참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라’는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라는 말도 유명하다. 불필요한 일로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말라는 경고다. 두 고사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글자가 ‘밟을 리(履)’다.

▶밟을 리(履)는 본래 ‘신발’을 뜻하는 말이어서 ‘밟다’는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 해서 이력(履歷) 같은 단어가 나왔다. 이력이라면 자신이 거쳐 온 학력이나 직업 등의 경력을 말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이력서다. 동서고금 할 것 없이 관직에 나가거나 입사 시험을 보려면 이력서가 필수여서 그 기원이 오래됐다.

▶이력서 쓰는 계절에 느닷없는 이력서 논란으로 정국이 어수선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경력 부풀리기 의혹으로 불거진 이력서 논란이 후보자의 공개사과를 불러온데 이어 기업체 지원서에 “아버지가 민정수석이니 많은 도움을 드리겠다”는 내용을 써 낸 아들 때문에 김진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결국 낙마했다.

▶학력·경력의 위조 사례는 늘 말썽이 된다. 자신에 대한 과대·허위광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돋보이려 했던 과도한 욕심이나 무모한 ‘아빠 찬스’는 결국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이력서에 대한 사회적 통념까지 뒤흔들고 있다. 억지로 발을 신발에 맞출 것이 아니라 제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야 한다. 분수에 맞게 사는 게 만고의 순리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