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66) 귀로/신경림

2021-12-26     경남일보

 

온종일 웃음을 잃었다가

돌아오는 골목 어귀 대폿집 앞에서

웃어보면 우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서로 다정하게 손을 쥘 때

우리의 손은 차고 거칠다

미워하는 사람들로부터 풀어져

어둠이 덮은 가난 속을 절뚝거리면

우리는 분노하고 뉘우치고 다시

맹세하지만 그러다 서로 헤어져

삽짝도 없는 방문을 밀고

아내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음성은 통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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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산책… 웃음이 일그러지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 얼굴을 부끄러워하던 얼굴을 떠올립니다. 많이 웃으면 가난이 사라질까요. 그래서 크게 웃어본 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웃어도 가난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다른 가난이었을까요. 어느 시장 모퉁이에서 어둠을 탄 술을 마시던 얼굴이 보입니다. 낮의 얼굴을 분노하고 뉘우치고 맹세를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잠시 다정해지는 겁니다. 차고 거친 세상살이가 조금은 나아질 거란 희망에 희망을 걸면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은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삽짝도 없는 방문을 밀며 아내 이름을 부르는 가난한 얼굴이 여기 있습니다. 끝내 통곡이 되어버릴 귀가를 어떻게 좀 할 수 없겠습니까. 그저 수굿이 서 있는 게 가난한 얼굴이 할 일의 전부인 걸까요. 시 앞에서 겸손해지는 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나는 더 가난해질 일만 남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