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왜 살아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종원 (경남도청 서부정책과 주무관)

2022-01-02     경남일보




인터넷 뉴스, 신문 기사뿐만 아니라 동영상 게시물이든 무엇이든 ‘제목’이 중요하다. 이것은 넘쳐나는 정보들의 틈바구니에서 ‘첫인상’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이유’ 같은, 언뜻 봐도 정답은 없을 것 같은 질문을 누군가 당돌하게 던졌다면, 그럼에도 하필 그것에 관심이 끌려 들여다보았다면, 우리는 새로울 것 없는 뻔한 내용에 실망하거나 기대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것이 책이라면 더 그런 느낌을 더 받는 것 같다.

‘지옥 같은 순간을 견디는 방법’ 이라는 글 제목의 책을 본적이 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싶으면서도 어떤 도움이 될 단서가 있을까 열었던 그 글은, 카드뉴스처럼 꾸며진 책 소개 글이었다. 제목이 왜 살아야 하는가였다. 책은 독일의 한 철학자가 인류 역대 사상가 10명의 철학을 소개 및 해설하는 구성이었다.

쇼펜 하우어의 “삶은 고통이다” 라는 말로 ‘세상이 고통으로 설계됐다’라고 설명하며, 모비딕의 저자 멜빌의 말을 인용해 ‘세상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진리를 찾으라고 하는 말은, 결국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뻔한 얘기처럼 보였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하는 심정으로 등 돌리고 돌아서려는 순간, 뭔가가 반짝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을 쓴 저자도, 그걸 소개하는 사람도, 결국 세상은 원래 고통스러우니 체념하고 푸념하라는 의도는 아닐 터였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게 있는 것의 소중함을, 그 가치를 발견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원래 아무 것도 내 것이 아니었다면, 사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 중에는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내게 가족이 있다면, 친구가 있다면, 곁에 사람이 있다면 그건 감사할 일이고 소중한 것이다. 혹은 내가 예상하거나 바랐던 것만큼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절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만큼 지내온 것은 내 능력만이 아니었구나 하며 감사하고, 내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과 나를 용납해 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할 일인 것이다.

새로이 맞이한 임인년 한 해도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과 기대가 가득하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그조차 돌아볼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에게 있는 것과 내 것을 견줘 보며 실망할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던 것이 내게 있음을 감사할 수 있다면, 올 한 해에는 그 위에 더 새로운 감사거리를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종원 경남도청 서부정책과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