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 양반과 기생이 만든 풍류 ‘진주교방 꽃상’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2022-01-05     경남일보


조선시대 진주는 인근 14개 지역을 속현으로 거느린 경남의 중심이었다. 진주 교방음식은 기예(技藝)에 빼어난 진주 기생들이 교방에서의 공연 준비와 함께 높은 관리들을 위해 만든 접대식이다. 마치 꽃밭 한 상을 받은 듯 모양과 빛깔이 아름다워 ‘꽃상’ 이라고도 한다.

1894년 ‘진주읍지’ 에 따르면, 진주 꽃상은 한양 백성들의 백일치 밥값에 버금가는 큰 금액이었다. 사흘에 한 번은 잔치가 벌어졌다.

영화와 치욕을 두루 포용한 촉석루는 전쟁 때는 장수가 올라 명령하던 군사지휘 본부였으나 태평성대할 때에는 대표적인 연회장소였다. 성대한 꽃상 너머로 나비꽃이 피고 소리꽃이 울었다.

술은 향기롭고 회는 싱싱했다. 산해진미( 山海珍味), 그야말로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춰 잘 차린 진귀한 음식이 가득했다. 음식 준비가 부족하면 병마절도사는 벌을 내렸다고 한다. 진주성 병마절도사의 사위였던 다산 정약용의 문집에 기록된 내용이다.

조선시대 음식이 발달했던 지역은 주로 큰 관청이 있던 곳이다. 진주는 행정목아, 병마절도영, 감영 등 관청이 즐비하여 높은 관리들의 왕래가 잦았다. 지리산과 남해바다를 접해 재료가 흔했다. 찬연한 교방음식문화는 진주가 지닌 화려함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지방관의 밥상은 정해진 첩수대로 차려지는 궁중음식보다 더 호사스러웠다. 인조 23년 2월 19일 ‘승정원일기’에는 궁중의 접대상을 받은 명나라 사신이 불같이 화를 낸 기록이 있다. 음식이 지방만 못 하다는 이유였다.

진주 꽃상은 기생과 양반이 함께 남긴 풍류다. 남도풍의 서정이 깃든 독보적 맛과 멋을 지녔다. 아름다움에 반하고 맛에 취한다.

K-POP 등 한류 열풍으로 한식이 인기를 끌면서 된장, 간장, 젓갈 등 우리의 발효과학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진주 꽃상에는 어리굴젓, 잡젓, 대구알젓, 조기젓에 진석화젓까지 올랐다. 굴 삭힌 물에 간장을 넣어 3일 간 가마솥에 달여 붓는 진석화젓은 어리굴젓보다 2배 이상 비쌌다.

교방음식은 작게 썰어 예쁘게 담아낸다. 주안상 위주로 차려져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맛이다. 반드시 차려야 하는 정찬(正餐)과 사치스러운 음식상인 가찬(加餐)으로 나누어 차린다. 산과 바다가 결마다 곱게 내려앉은 꽃상에 진주의 교방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