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67) 눈/김소월

2022-01-09     경남일보

 

눈/김소월



새하얀 흰 눈, 가비얍게 밝을 눈,

같아서 날릴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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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산책… 나는 하얗고 가벼운 눈이에요. 밝게 빛나기도 하고 바람에 흩어져 날리기도 해요. 불길에는 아예 닿아보지 못했고요. 닿기 전에 녹는 속성을 가졌거든요. 이런 나를 변덕스러운 계집의 마음이라 하네요. 변덕스럽다는 사랑스럽다와 같은 의미라 오독 해도 괜찮겠지요. 그것은 곧 임의 마음이기도 하다 했으니까요. 사랑하는 마음은 맑고 차고 가볍고 경쾌한 것이에요. 이것을 총체적 천진함이라 말해도 될까요. 천진함은 상쾌한 겨울바람을 닮았어요. 가비얍게 밝을 눈에서 이보다 더한 가벼운 경쾌함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새하얀과 흰 눈의 중첩되는 유의어 반복에서 한층 가볍고 발랄한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다가오니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가벼운 것만이 아니에요. 가벼운 것들이 쌓여 무게를 갖는 눈이에요. 그런 나로 인해 겨울나무는 뽀득뽀득 앓은 소리를 내겠지요. 가벼운 것이 무게를 가질 때 가벼운 것은 거룩한 것이 될 겁니다. 가벼우면서 결코 가볍게만 읽을 수 없는 세계가 무궁하다는 걸 무겁게 안아봅니다. 그러면서 사랑의 순결이 즐거움의 자리에 먼저 앉는 걸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