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인의 에세이 픽션을 입는다] (3)보는 눈 듣는 눈

2022-01-18     경남일보
현재 우리가 널리 쓰고 있는 수필이란 말은 실은 일본에서 받아들인 말인데, 당초 일본서 이 수필이란 말을 막연히 사용 했던 것이다.(윤오영. 수필문학입문. 태학사. 2001) 이런 식으로 ‘隨筆수필’이 일본 거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에세이’가 들어오기 전에 이 나라에는 隨筆수필이 있었다고 강력히 주장한 분들이 있었어요.

듕귁 남송 때 홍매(洪邁. 1123-1202)라는 사람이 쓴 책 이름이 용재수필(容齋隨筆)이고, 우리나라에도 박지원(1737-1805)의 일신수필(馹?隨筆)을 비롯해서 글자 ‘隨筆’이 쓰인 책들이 있으니까, 이런 사례를 들어 隨筆수필이 일본 거라는 걸 강력히 부인합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했는데,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같아요.

글이나 책 중에는 매서운 회초리가 더러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씨???의 소리’나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 같은 건 사람을 부끄럽게 하죠. 이한섭 교수가 지은 ‘일본에서 온 우리말 사전(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2015.)’도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은 40여 년에 걸쳐 한·듕·일 학자들이 1880년대 이후 일본에서 우리말에 들어온 어휘를 조사하여 정리한 건데, 수록 대상 낱말이 오천여 개나 됐지만, 걸러서 3634개를 실었다고 합니다. 그대 놀라지 말아요. 우리가 지금도 잘 쓰고 있는 과학, 철학, 미술, 대통령, 판사, 검사, 문화, 무의식-이런 것들이 모두 일본 말이라 합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 말고도, 1880년 이전에 듕귁이나 우리말에 용례가 있으나, 일본에서 의미를 전용한 낱말을 우리가 그대로 갖다 쓰고 있는 말마디가 많이 있는데, ‘예술’과 ‘문학’도 그런 거라 합니다.

‘예술’은 듕귁 고전 후한서에 있긴 한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예술은 일인 니시아마네가 Art를 번역한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유길준 선생이 ‘서유견문’(1895)에 처음 썼다고. ‘문학’도 듕귁어에 전거가 있긴 한데 동양에서는 원래 ‘학문’을 의미했대요. 일본에서 메이지 시대에 literature의 번역어로 ‘문학’을 쓰면서 ‘학문’의 뜻은 날아가고 우리가 지금 열나게 쓰고 있는 문학 ‘문자로 창작한 예술작품’ 즉 문예의 의미가 됐다고.

친일파 하면 죽창 들고 싶은 우리들, 부끄러워라, 겨레말 버리는 글쟁이들이여! 우리는 오늘도 ‘대통령 000’라 사인하고 계실 것이고, 과학 철학 미술 판사님 검사님 굽벅거리느라 바쁘잖아요.

한평생 겨레말 찾고 다듬고 만들다 돌아가신 어른, 진주가 낳은 훌륭한 우리 말 선비 김수업 선생님은 문학이 아니라 ‘말꽃’이라 하셨느니. 이토록 아름다운 말이 있음에도 시인 소설가 수필가라는 이 나라 사람들이 ‘문학’이라는 왜말 하나 버리지 못하니까, 함석헌 선생님이 ‘씨???’ 빠진 녀석들이라고 꾸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