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동네 공약

정재모 (논설위원)

2022-01-26     경남일보
초나라가 쳐들어오자 제나라 위왕이 순우곤을 조나라 원병을 청하는 사신으로 보낼 때였다. 나라에서 준비한 약소한 예물을 보고 순우곤이 하늘에 대고 껄껄 웃었다. 까닭을 묻자 대답이 이랬다. “한 농군이 돼지 발굽 하나와 한 잔 술로 풍년기원 제사를 지내던 일이 생각 나서입니다.” 작은 성의로 큰 것 얻으려느냐는 거였다. 앙천대소(仰天大笑)와 돈제일주(豚蹄一酒)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요즘 대선 후보들의 ‘동네 공약’들이 세간의 화제다. 지자체 둘레길, 아파트 단지 공원조성과 지하주차장, 오토바이 소음근절, 택시 운전석 칸막이…. 기초의회 의원·이통장 선출 때에나 나옴직한 공약들이 대선 후보의 입에서 쏟아진다. 생활 밀착형이란 명분이지만 대통령 되겠다는 이들의 하찮은 약속이 한 잔 술로 풍년 비는 제사같다는 생각이다.

▶굶주린 범이 모기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긴 하다. 후보의 계란말이 솜씨에 감성 지지가 몰린다는 추세도 들었다. 대선이라 해서 거대담론만 하자는 건 아니지만, 동네 놀이터 조성 같은 공약은 어째 좀 쩨쩨하다. 새우로 잉어 낚기인가. 정치가 국민의 삶과 밀접해야 한다는 거야 누구나 알지만 대통령이 되어 펼치겠다는 포부가 고작 이건가 싶어 쓴웃음이 난다.

▶하긴 사병 월급 200만원 주겠다느니, 연애수당 얼마 지급한다느니, 몇 년 안에 집 수백 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구름에 나무 심는 소리들보다야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동네 공약 다 써먹으면 시장·군수나 시·군의원 후보들은 무슨 공약을 할꼬. 실없이 걱정된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