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67]

‘범’과 아랑곳한 이야기(3)

2022-02-16     정희성

 

나라빛 뽑기(대통령 선거) 판이 제대로 벌어졌습니다. 저마다 서로 나를 뽑아 달라며 여러 가지 다짐들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토박이말 살리는 일을 나라에서 좀 챙겨 주십사 부추기는 말씀을 여러 곳에 드렸지만 아쉽게도 그러겠다는 한 분도 없어서 아쉽기만 합니다. 언젠가 그런 분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토박이말 살리기 이름 쓰기(서명)를 하고 있습니다.이 글을 보시고 토박이말 살리기를 나라에서 챙겨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하시는 분들은 아래 빠알보람(큐알코드)를 찍어 걸어 둔 곳으로 가셔서 이름을 적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 글에서 범과 아랑곳한 버릇말(관용어) 몇 가지를 알려 드렸는데 오늘은 범과 아랑곳한 옛말(속담)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쓰고 있는 것들 가운데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처럼 ‘호랑이’가 들어가 있는 것들은 모두 ‘범’으로 바꾸면 되니까 따로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알고 쓰면 좋을 것 몇 가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범 나비 잡아먹듯’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두 마리 새끼를 낳느라고 배가 홀쭉한 범이 나비와 같은 아주 적은 먹이를 잡아먹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먹는 양은 큰데 먹은 것이 변변치 못해 양에 차지 않음을 빗대어 이르는 말입니다. 흔히 배가 엄청 고픈데 먹은 게 양이 차지 않을 때 “간에 기별도 안 간다”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그럴 때 쓰면 좋을 것입니다.

“범도 새끼 둔 골을 두남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요즘 잘 안 쓰는 토박이말 ‘두남두다’는 말이 나옵니다. ‘두남두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잘못을 두둔하다’와 ‘애착을 가지고 돌보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잘못이나 허물을 편들어 두둔해 주다는 뜻도 있고 돕거나 돌보아 주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 말은 ‘범과 같은 사나운 짐승도 제 새끼를 두고 온 골짜기는 힘써 도와주고 끔찍이 여긴다’는 뜻으로 누구나 제 자식 일은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며 잘해 준다는 것을 빗대어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 옛말을 자주 썼다면 ‘두남두다’는 토박이말도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두둔하다’는 말을 써야 할 때 ‘두남두다’는 말을 떠올려 써 보시기 바랍니다.

“범 아가리에 날고기 넣은 셈”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 말은 욕심이 많은 사람 또는 욕심 사나운 사람에게 간 몬(물건)은 도로 찾지 못함을 빗대어 이르는 말입니다. 범이 제 입 안에 들어온 날고기를 뱉어 낼 까닭이 없는 것과 같이 욕심 많은 사람은 제 손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 내어 놓지 않다는 것을 견주어 나타낸 말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범은 그려도 뼈다귀는 못 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비록 범은 그릴 수 있으나 가죽 속에 있는 범의 뼈는 그릴 수 없다는 뜻으로 겉모양이나 형식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알기가 어려움을 빗대어 이르는 말입니다. 이 말과 비슷한 말로 “범을 그리어 뼈를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사귀어 그 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말도 있습니다.

위와 같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살면서 알거나 깨닫게 되신 것들을 범과 아랑곳한 말로 만들어 쓰셨기 때문에 이런 옛말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이런 옛말을 알맞을 때 떠올려 쓰시면 여러분의 말맛과 글맛을 새롭게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