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심려를 끼쳐드려…

정재모 (논설위원)

2022-02-17     경남일보
김원웅 광복회장이 끝내 사퇴했다. 알려진 비리 혐의에 대해선 “관리 잘못한 불찰”이라고 했다. 살피지 못했을 뿐 본인 잘못은 아니란 거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내외도 지지난주 공개 사과했다. 도지사 재임 때 부인 김혜경씨가 공무원을 집사처럼 일 시키며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썼다는 데 대해서였다. 버티다가 시끄러워지자 잘못을 시인한 것. 그 사과의 말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였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빼도박도 못할 무슨 혐의가 드러나면 예외없이 ‘불찰’, ‘심려를 끼쳐드려…’ 운운한다. 이 말들은 이제 관용적 사과 문구로 굳어졌지만 따져보면 가증스런 어법이다. 불찰은 고의 아닌 과실이란 뜻이고, 심려(心慮)는 마음속의 걱정이다. 심려 끼쳤다는 건 “걱정을 끼쳤다”는 말이다.

▶걱정을 끼치다니, 혹 듣는 이의 부아를 한층 돋구는 건 아닐까. 심려를 끼쳐드렸다는 말은 윗분을 걱정하게 해 송구할 때 쓰는 말이다. 취직 시험 같은 데 떨어진 자녀가 자식 걱정에 상심해 하는 부모님께나 드릴 법한 말이 아니겠는가. 혐의자를 쳐다보는 이들의 울화는 아랑곳않고 심려 끼쳐드렸다고 하는 건 옳은 어법이 아닐 듯하다.

▶자기편 말고 누가 걱정을 할까. 걱정이 아니라 부글부글 끓는다. 죄짓고 머리 조아리는 사람들 말부터 제대로 할 일이다. “못할 짓 저질러 죽을죄를 지었습니다”고 했으면 한다. 이 말을 하기 싫거든 최소한 “기분 언짢게 해, 우짤꼬예?”라고나 하면 어떨까. 이때의 ‘우짤꼬예’는 물음 형식이지만, 처분대로 하시라는 앙청(仰請)이니까.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