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58]표지판 (하아무 소설가)

2022-03-10     경남일보


차길 씨는 출타 중.

무가내로 들어왔다간

나갈 길을 못 찾을 수도 잇씀.

-하아무 소설가의 ‘표지판’



길눈 어두운 이가 더러 있다. 저 차밭 이랑이 길인 줄 알고 차를 몰고 들어갔다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일을 내는 이가 이맘때면 생긴다. 그런 일이 또 생기기 전에 표지판을 세워둬야 한다. 지난 보름날 차길이가 집에 다니러 왔을 때 표지판 글을 써달라고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지만 그냥 보내고 말았다. 차길이 어머니 상평댁은 겨울 동안 박경리문학관 한글학교를 다녔다. 뒤늦게 글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여 공부에 재미가 붙었다. 받침 글자까지 제법 읽고 쓰기까지 한다. 차길이가 왔을 때 표지판을 써달라 하지 않은 것도 꼭 잊어버려서만은 아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쓴 후, 눈에 잘 띄도록 글자를 굵게 칠해 놓고 보니 그럴듯하다.

‘찻길’ ‘차밭 이랑’ ‘차길 씨’인지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안내판이 하필 소설가의 눈에 띄었다. 소설가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부연 설명까지 달아준다. 상평댁의 맞춤법대로. 한편으로 저 문장을 쓴 사람은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