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71) 기대다-오성일

2022-03-13     경남일보

 

기댄다 꽃에 기대고, 송사리떼 지나는 물그늘에 기대고, 조금 남은 저녁햇살의 등짝에 기댄다 기댔다가 넘어진 날이 많았다 실은 너 몰래 네게도 기댔다가 기우뚱 중심 잃은 마음을 부축해 돌아온 날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또 기대고 있다 서로 발을 빼지 못하는 그 기댐에 기대고 있다 기댄 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마음 한쪽 기울이니 내게 기대오는 꽃, 그늘, 저녁, 그대의 글씨체를 닮은 따스한 상처들



---------------------------------------------------------------------------------

무엇에 기댄다는 것은 나 또한 무엇에게 나를 내어준다는 말이겠지요.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것만이 아니어서 우리는 어떤 것에 기대어 사는 거겠지요. 상처가 많은 사람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외로운 존재라는 무의식이 기댄다는 본능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닐는지요. 오늘은 저녁이 쓸쓸해서 놀이 붉어지는 서쪽 하늘에 마음을 기댑니다. 다른 오늘은 서러움이 밀려와 봄물 오르는 나무에 기대기도 하고요. 꽃망울 틔우는 목련에게, 붉은 속내를 보여주는 명자나무에 기대기도 합니다. 송사리 떼 출렁이는 물그늘에 기대는 날은 많이 울어서 세상이 잘 보이지 않은 때이고요. 너 몰래 네게 기댄 날은 나를 지탱하기 힘든 날이었겠어요. 기우뚱하는 나를 세우려 안간힘 쓰면서 기대는 것에 기대어 몸을 추슬렀겠어요. 그렇게 흔들리기도 하면서 우리는 또한 기대오는 것들에 마음을 내줍니다. 마음 한쪽 기울이니 내게 기대오는 것들이 가만히 보입니다. 꽃과 그늘과 저녁과 쓸쓸함과 애틋함, 그리고 손 닿을 수 없는 것들까지요. 이런 것을 높고 아름답게 받아들이며 상처를 따뜻이 보듬어 봅니다. 보듬으면서 서로에게 기대어 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