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벙어리도 꽃이 피면…

정재모 (논설위원)

2022-03-31     경남일보
술잔을 주고 받다가 소설가 김동리가 시인 서정주에게 말했다. ‘내가 시를 한 편 썼네’ ‘어디 한번 읊어보소’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이라…’ ‘기막힌 절창일세’ 더 들을 것 없다며 서정주가 외쳤다. ‘내 이제 그대를 시인으로 대접할지니…’ 전라도 사람 서정주는 경상도 김동리의 발음을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으로 들었던 거다. 시인이 무릎을 쳤을밖에….

▶오탁번은 이 일화를 시 ‘시인과 소설가’로 형상화했다. 시에서, 김동리가 헛기침을 하면서 ‘꽃이 필 때’가 아니라 ‘꼬집힐 때’라고 바루어버렸다고 썼다. 김동리가 안 했으면 좋을 말을 한 건지, 오탁번이 생략해도 좋을 구절을 쓴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오문(誤聞)으로 두었더라면 더 아름다운 일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바야흐로 봄꽃이 지천이다. 봄꽃 어우러진 청와대 상춘재에서 지난달 28일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가 만찬회동을 했다. 마치고 윤 당선자측이 밝혔다. “집무실 이전 시기와 내용 같은 걸 공유하고 대통령께서 협조하시겠다고 했다. 이전 계획 예산을 면밀히 살펴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다음날 열린 국무회의에 이전 관련 예비비 건은 상정 되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대통령의 발언엔 ‘정확한 이전 계획에 따른’이라는 전제가 있지 않냐.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한 사람은 계획을 잘 살펴보겠다에 방점을 뒀는데, 한쪽은 ‘협조’에 귀가 번쩍했던가 보다. 완곡하게 꼬집는 말을 듣는 쪽에서 제논에 물 대듯 꽃을 피워버린 걸까.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