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박쥐

한중기 (논설위원)

2022-04-20     경남일보
지난 주말 새로 난 진주 내동 자전거 도로를 걷다가 터널 안 대피공간에서 이상한 검은 물체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다. 놀랍게도 박쥐였다. 폐 터널에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서 밤낮 할 것 없이 대낮처럼 환한 빛이 들자 겨우 손바닥만 한 그늘진 모퉁이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어둠이 들지 않아 활동하지 못한채 깊은 잠에 빠진 듯 했다.

▶박쥐를 보는 순간 코로나 바이러스가 맨 먼저 떠올랐다. 5000만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아온 유일한 비행 포유류인 녀석이 기회주의자의 대명사도 모자라 신종 감염병의 주범으로 몰려있는 형국이다.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박쥐는 한 마리당 평균 2.67종 이상의 다양한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하니 도리 없다.

▶박쥐는 주로 곤충을 잡아먹거나 과일과 꽃의 꿀을 즐긴다고 한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퇴치는 물론 수분을 매개해 식물번식을 도와 자연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양한 바이러스의 보유숙주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동시에 인간 생활에 일조하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라 할 수 있다.

▶내일(22일)은 마침 ‘지구의 날’이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새삼 소중함을 일깨운 지구환경. 오랫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바이러스들이 경쟁하듯 인간들에게 몰려들고 있다. 인간에 의한 생태 변화 때문일 터. 인간의 각성을 촉구하는 박쥐의 경고인지 모른다. 환한 터널에 갇힌 박쥐 한 마리도 가벼이 볼일 아니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