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이념의 골

정재모 (논설위원)

2022-04-21     경남일보
한자로 짝지어진 사자성어는 대개 중국 옛글에서 나왔다. 해서 그 유래가 다 중국인 줄 알기 쉽지만 토착 성어도 의외로 많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검수완박’도 아마 훗날 어떤 보편적 의미를 갖는 성어가 되리라. 젯상 진설 때 흔히들 쓰는 좌포우혜(左脯右醯;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에 놓음)니 좌김우리(左金右李:산소를 기억하는 말로, 왼쪽은 김씨 오른쪽은 이씨) 같은 말들이 그 예다.
 
▶우혁좌초(右革左草)란 말도 재미있는 ‘토종 성어’의 하나다. 오른쪽 발엔 가죽신을 신고 왼발엔 짚신을 신는다는 게 넉 자에 담긴 뜻이다.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고 읊었던 임제(林悌)가 어느 날 한쪽엔 가죽신, 다른 쪽엔 짚신을 신고 말에 올랐다. 하인이 아뢰자 임제가 일렀다.
 
▶“괘념 말라. 오른쪽 사람은 내 가죽신만 볼 것이고, 왼쪽 사람은 짚신만 볼 것이다. 짝 안 맞는 걸 어찌 알겠느냐?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데 그게 잘못된 것임을 깨우쳐 주려 하느니라.” 동인과 서인 간의 극심한 붕당 폐해를 그렇게 풍자한 거였다.
 
▶요즘 우리나라 좌우 이념의 골이 조선시대 동인 서인 간 ‘붕당 골’만큼이나 깊다. 여론조사 결과들이 보여주는 팽팽한 좌우 대립 양상이 이를 말해준다. 장관 후보자, 검수완박 같은 정책, 국민적 관심을 끄는 지방선거 출마자에 대한 호불호가 대개 거의 반반이다. 임제의 짝 안 맞는 신발 양쪽을 조망하는 눈으로 우리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자는 호소는 우리 수준에 너무 과한 바람일까.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