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함께 자라는 아이들

허미선 (시인·교사)

2022-05-09     경남일보


가정의 달 오월이다. 학생들도 부모님도 모두 행복한 달이었으면 했는데 연휴 들어가기 전날에 일이 생겼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아이들은 들떴고 자제가 안 되는 몇몇 아이가 있어 늘 지도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으나 선생님의 눈이 따라가지 못하는 곳에서 일이 생겼다. 점심을 먹으려고 급식소로 가는 길에 앞에 줄 선 친구를 발로 찬 것이다.

개별 지도가 필요한 학습 활동을 하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장난을 쳐서 지도해놓으면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일을 반복했다. 가정에서 자기 뜻대로 해도 무방했던 아이는 “그렇게 하면 안 돼.”를 알지 못한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이제 알고는 있지만, 선생님의 눈길이 닿지 않는 상황에선 여전히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단체 생활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제 뜻대로 하는 소수의 아이를 이끌어 평화로운 교실을 만들어 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고집이 세고 부모님의 말씀도 듣지 않는 경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피해를 본 아이의 처지에선 마냥 이해하며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다.

어른들의 어린 시절엔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주먹다짐으로 싸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요즘엔 또래지만 조금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은 선생님께 알리며 주먹다짐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쌍방이기보단 성격이 급하고 자제력이 부족한 아이가 일방적으로 때리게 된다.

한 해의 인연으로 자제력이 있고 배려할 줄 알고 이해심이 많은 아이와 고집이 세고 욕심이 많고 자제력이 부족하고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아이가 한 반에서 뜻을 조율하며 함께 성장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좌충우돌 일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 속에서 원만한 교우관계를 배우고 나아가 사회성이라는 능력을 기를 수도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아메리칸 인디언 오마스 족의 격언이 있다.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하여 마음대로 행동하는 아이와 함께 한 해를 보내는 자녀의 어려움을 알기에 부모님이 너그러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아직 미숙하기에 학급의 친구, 부모님, 선생님이 함께 기다리며 키워가겠다는 학급공동체 의식을 확산하면 좋겠다. 아이의 자람이란 성장을 의미하므로 시간을 두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학교 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