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술잔은 여섯 번 돌리고 안주는 다섯 번 올린다

박미경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2022-05-25     경남일보


유교에서는 예와 악을 천지의 조화이자 질서를 이루는 근본으로 보았다. 사대부들의 술자리는 조정에서 엄선한 음악에 맞춰 예법에 따라 마셨다. 사대부가 아닌 계층이 3인 이상 안주를 갖춰 놓고 양반을 흉내 내면 형벌에 처해졌다.

술잔은 여섯 번 돌아가고 안주(미수행과·味數行果)는 코스별로 다섯 번에 걸쳐 차리는 게 원칙이다(육배오미·六盃 五味).

기생들은 양반집 잔치나 모임에 나가 흥을 돋우는 역할도 했다. 반가에서 관아에 단자(單子)를 보내 청하면 기생들을 보내주었다.

소리 기생이 노래하고, 때는 창 소리가 별빛을 머금기 시작하는 저녁, 주인이 첫 잔을 올리면 기생이 큰 접시(俎)에 배를 대령한다. 한입 베어 물면, 수분이 가득하고 단 맛이 향기롭다. 가히 진주의 특산품이다.

두 번째 잔부터 본격적인 안주상이 나온다. 속이 편한 음식을 두어 가지씩 코스별로 차린다.

전유어와 배추의 어린 속대를 숙성시킨 단자김치로 무겁지 않은 안주를 낸다.

세 번째 잔이 돌아간다. 서로 음식을 권하며 주나라 문왕의 후비(后妃)를 칭송하는 ‘자하동조’를 부르며 안주상을 받는다. 이번엔 생선탕과 전복김치다.

네 번째 잔에는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의 삼현(三絃)으로 풍류를 더하니 취기가 고조된다. 가야금과 창(唱)이 조화롭게 흐른다.

다섯 번째 잔과 안주상을 받으면 ‘방등산’이 울린다. 신라 말기, 장성에 위치한 방등산에 도적떼가 많아 아녀자들이 많이 잡혀갔는데, 자신을 구해주지 않은 지아비를 원망하는 내용이다. 고려사에 가사 없이 그 유래만 전한다. 백제의 향악인 방등산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초기에 고려의 속악과 당악을 교육시키던 관습도감(慣習都監)에서 습악됐으며 연악(宴樂)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섯 번 째 음악인 ‘낙양춘조’는 장중하고 느린 선율이다. 궁중에서는 음악에 맞춰 탕을 올렸다. 생선회, 영계를 구워낸 계야적, 녹두전 같은 것들도 있었다.

술안주는 위에 부담이 되지 않고 담백한 것을 위주로 차린다. 진주교방음식 중 찜요리가 발달한 것도 연회상의 안주로 차려졌기 때문이다. 향긋한 백합찜, 부드러운 가오리찜, 달금한 게찜, 진주 꽃상 위로 계절이 먼저 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