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신기업가정신과 기업선언문

2022-06-07     경남일보
 



전통적으로 기업가 정신이란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기업가의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으로 묘사되어왔다. 그래서 이런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기술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이며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으로 이해되었다. 기업가 정신에 대해 최초로 체계적으로 접근한 학자는 혁신으로 유명한 슘페터(Joseph A. Schumpeter)다. 그는 이윤 추구를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을 기술 혁신이라고 규정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조적 파괴’에 앞장서는 기업가의 노력이나 의욕을 기업가 정신이라고 정의했다.

슘페터에 의하면 이윤이란 바로 창조적 파괴행위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업가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다. 그런데 한 기업가가 혁신을 이뤄 이윤을 얻게 되면 혁신적인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행위는 곧바로 모방돼 사회 전체적으로는 점차 이윤이 소멸하게 된다. 경기순환은 이 같은 창조적 파괴가 주기적으로 이어져 나타나는 자본주의 경제의 고유한 현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편 ‘현대 경영학의 구루(스승)’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 정신을 ‘위험을 무릅쓰고 포착한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의 정신’이라고 이해했다. 그는 기업가 정신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공공기관에도 필요하고 새로운 기업뿐 아니라 오래된 기업에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해 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사회가 ‘다음 사회’로 진보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가운데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인구절벽 등 새로운 위기와 과제를 맞이하고 있어서 기업가정신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5월 24일에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를 중심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굴지의 대기업부터 우아한형제들, 마켓컬리 등 유망 스타트업까지 국내 경제계를 대표하는 76개 기업이 모여 ‘신(新)기업가정신’을 선언하고 관련 협의체인 ‘신기업가정신협의회’(Entrepreneurship Round Table·ERT)를 공식 출범시켰다. 이미 산업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이 세계적으로 급격한 산업생태계의 변화와 산업구조의 변혁에 따라 ‘이윤을 넘어 사회적 가치에 비중’을 둠으로써 기업가정신에도 선제적으로 패러다임의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려는 적극적인 대응노력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날 대표 강연에 나선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인구절벽 등의 새로운 위기와 과제 해결을 위해 기업도 새로운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경제계의 동참을 주문했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축사에서 환경과 사람, 사회를 위한 구체적 실천과 행동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기업가정신은 시대에 따라 그 폭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며 “경제개발의 선구자로서, 또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핵심 축으로서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불굴의 도전을 지속하는 새로운 기업가정신이 다시 발휘돼야 할 때”라고 강조하였다.

기업선언문은 기업인, 전문가 등이 만든 실천 과제의 공통분모인 셈이다. 기업선언문에는 △경제적 가치 제고 △윤리적 가치 제고 △기업문화 향상 △친환경 경영 △지역사회와 상생 등 5대 실천과제가 담겼다.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위한 5대 실천 명제로는 △혁신·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적 가치 제고 △외부 이해 관계자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통한 윤리적 가치 제고 △조직 구성원이 보람을 느끼고 발전할 수 있는 기업문화 조성 △친환경 경영 실천 △지역사회 동반 성장 등을 제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동 챌린지의 예시로 청년 채용 릴레이, 임직원이 모두 눈치 보지 않고 정시에 퇴근하는 문화 정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자제하는 ‘제로 플라스틱 데이’ 등이 제시됐다. ERT는 향후 구체적인 공동 챌린지 방안을 논의해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