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그리드플레이션

정재모 (논설위원)

2022-07-07     경남일보
전쟁통에도 룰룰랄라 떼돈 벌었다는 치부담(致富譚)을 가끔 듣는다. 남들 총탄 맞고 헐벗고 굶주릴 때 탄피를 주워 부자가 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세상 곳곳에 흔하다. 한국전쟁에 피 한 방울 안 흘린 일본이 전쟁 물자 장사로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는 따위가 그런 예. 약빠른 자는 법당에 가도 젓국 챙겨먹는다는 속담이 있다면 요새는 ‘그리드플레이션’이란 게 있다.
 
▶탐욕을 뜻하는 ‘그리드greed’에 인플레이션의 접미사 부분을 떼다 붙인 말이 ‘그리드플레이션’이다. 최근 미국에서 비롯된 신조어로, 40여 년 만에 물가가 최악 수준으로 치솟자 일각에서 대기업의 탐욕이 인플레를 조장한다고 비난하면서 생겨난 낱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핑계 삼아 상품 값을 과하게 올려 그걸 초래한다는 거다.
 
▶미국·대기업·전쟁 따위 거창하게 들먹일 것 없이 국내 소줏값을 보자. 공장들은 원가가 올라 불가피하다며 출고가를 몇 십 원 올린다. 소매점들은 눈치 보기도 잠시, 곧 총대를 메는 퍼스트 펭귄이 나타나게 마련. 두 홉 들이 소주는 단번에 이천 원에서 삼천 원으로, 다시 사천 원으로 거의 빛의 속도로 뛴다. 일러 인플레 기대심리라 했던가.
 
▶출고값 몇십 원 오르자 백 원만 올려도 될 법한 술 한 병 값을 천 원 단위로 왕창 올리는 소매상이 더 문제 아닐까. 인플레 난리통에 이끗 단단히 챙기려는 장삿속이 얄밉다. 5월엔 5%, 6월엔 6% 올랐지만 7월엔 7% 오른다는 물가. 이 속수무책의 현실 앞에 서민의 한숨은 나날이 깊어만 가건만….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