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75] 철거 (한철수 시인)

2022-07-21     경남일보


몇십 년 모아 세운 집

따뜻한 둥지



한 삽에, 우르르 폭삭



무너진 눈물 한입 물고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한철수 시인의 ‘철거’



고향 마을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깊고 둥근 모형이 아니라, 어른 두 사람의 키가 채 되지 않는 깊이와 네모 모양의 우물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동네 사람들은 우물에 모여 배추를 씻고 빨래하고는 했다. 한여름 밤이면 마을 아낙들은 우물에서 목욕하기도 하였다. 한낮이면 우물물이 넘쳐흘렀고 어린 나는 바가지로 우물물을 떠 쓰고는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우물을 신성시하여 추석과 설 명절이 다가오면 우물 청소를 했다. 물을 다 퍼내고 장정 두엇 들어가 바위벽을 닦아냈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바위틈에서 어른 팔뚝만 한 가물치 한 마리가 나왔다 사라지곤 하였다. 사람들은 물이 비리지 않고 마르지도 않는 것은 가물치가 신성한 존재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재건축 사업으로 집이 헐리기 전까지 수십 년을 저 새가 시인의 집에 살았다. 지금 내가, 그대가 아끼는 모든 일에 신성의 상징적인 것이 함께 있음을 상기해볼 일이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