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욕설 플랫폼’

한중기 (논설위원)

2022-08-03     경남일보
누구나 극한 고통이 닥치면 저절로 욕이 나온다. 고통의 순간 ‘싸움-도망 반응’과 함께 아드레날린이 급증하면서 욕설이 나오면 스트레스는 높아지지만, 오히려 기분이 나아진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통각상실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욕설이 실질적인 문제해결은 못하지만 단기적으로 정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욕설은 매우 감정적 언어여서 너무 자주 하면 욕설의 긍정적인 효과가 떨어지게 돼 있다. 본인의 심리적 해방구가 될지는 몰라도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사회의 악이 될 수도 있다. 요즘은 ‘말’ 보다 ‘문자’ 욕설이 더 무섭다. 그것도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욕설을 ‘문자 폭탄’으로 날리는 세상이다.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의원이 ‘욕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이제는 팬덤 욕설도 부추기느냐’며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그것도 ‘양반의 도시’라 불리는 경북 안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랬다. 심지어 “오늘, 이번 주 가장 많은 욕설 문자를 받은 의원을 집계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도 했다.

▶욕설 플랫폼이 실제 설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문가지다. 정치적 댓글은 욕설로 가득한지 이미 오래다. 전자민주주의로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 보자는 원론적 취지라지만, 공당의 플랫폼이 저질의 욕설 배출구여서는 안 될 일이다. 정치적 플랫폼이 욕설과 폭력적 의사표현의 경연장이 되고 있는 마당에 욕설 플랫폼 개설은 상식에 반한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