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오동동 타령과 마산 오동동

임영주 (마산지역문화연구소장)

2022-08-03     경남일보


창원특례시 근세사에서 마산 오동동(午東洞)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거주지였던 신마산에 맞서 구마산으로 불리며 한국인의 상권수호를 외쳤던 중심지다. 광복 후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 ‘3·15 의거’ 발상지요. 이원수 선생이 ‘고향의 봄’을 창작한 곳이다. 요즘에는 대중가요 ‘오동동 타령’의 시대적 배경지로 더 알려져 있다.

오동동 타령은 1955년 한복남 작곡, 야인초 작사, 황정자가 불러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다. 그 동안 노래가사에서 오동동을 두고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한 예술인이 가수와 만나 배경지이야기를 들었던 내용을 방송에서 증언하게 되면서 이제는 마산 오동동으로 굳어진 상태다.

마산은 6·25 한국전쟁 때 부산과 함께 북한군에 점령당하지 않아 전국의 피란민들이 몰렸던 도시이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다양한 문화예술이 양산되고 있었다. 특히 오동동은 마산만에 입항하는 배에서 내리는 선원들로 술집과 밥집도 성시를 이루었다. 이곳에는 한량도 기생도 있었으며 대폿집에서 삶의 고달픔을 한잔 술로 달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동동 타령의 노랫말에 ‘오동추야(梧桐秋夜)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를 보면 오동추야는 가을 밤에 떨어지는 오동잎을 말한다. 이어서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는 여럿이 함께 어울려 마시는 동동주 한 사발의 흥겨움이 묻어나는 내용이다. 평소에 별 생각없이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때는 몰랐지만 의미를 생각하고 되뇌여보면 음율까지 맞아떨어진다. 그야말로 명시의 한구절에 버금가는 참으로 멋진 노랫말이라는 게 느껴진다.

오동동에는 늘 한량들과 어울린 기생들의 장구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통술집에는 젓가락 장단으로 밤 놀음하는 서민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창원특례시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를 만드느라 한창이다. ‘오동동 소리길’을 만들어 오동동 타령의 추억이 어린 오동동 부활에 힘을 쏟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어둑한 골목을 밝게하고 지저분한 벽면을 지역 출신 화가의 작품으로 꾸몄다. 가게 안에는 한 상차린 통술이 준비되어 있다. 먹거리 취향에 따라 아구찜과 복국을 먹을 수도 있고, ‘오동동 문화의 광장’에 공연이 있는 날은 즐거움을 더 할 수 있다. 이웃에는 창동예술촌과 부림창작공예촌도 있으니 마산 오동동은 가 볼 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