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첫 벼 수확

정재모 (논설위원)

2022-08-11     경남일보
시설재배 보편화와 농산물 수입 개방화로 거의 모든 과일과 채소의 ‘제철’이 없어졌다. 웬만한 여름 과채는 한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시대다. 여기에다 저장 기술 발달로 사철 ‘햇과일·햇채소’를 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농산물의 ‘제철’ 개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벼만은 그렇지 않다. 햇벼와 햅쌀은 엄연히 제철이 있다.

▶곡우 무렵 씻나락 담그고 오월에 이앙하여 한여름 뙤약볕 네댓 달을 걸우어 시월에 거두는 게 벼농사다. 보관 관리가 별로 어렵지 않은 데다 쌀 유통시스템은 계절과 무관하게 재배욕을 부추길 만큼 각별한 이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수확 시기를 한두 달 앞당기는 조생종 재배로 추석 출하를 겨냥하는 농가가 더러 없지 않지만 벼 수확의 제철은 10~11월이다.

▶벼 수확은 누런 색깔과 서늘한 찬바람을 뇌리에 그리게 한다. 수확의 제철은 가을인 거다. 농산물의 수확이 다 그렇듯 농민에게 벼 수확은 기쁨 그 자체다. 줄줄 흘려야만 했던 지난 여름 땀의 고통도 한꺼번에 잊게 하는 수확 때에는 모진 더위마저 물러가는 철인지라 더 즐겁다.

▶아직도 삼복의 한가운데지만 도내 첫 벼 수확 소식이 올해도 어김없이 한두 달 앞서 왔다. 서울과 중부 일원에 물난리가 났던 지난 8일 우리 도내 창녕군 고암면 한 농가는 논 500평의 벼 수확을 했다. 더운 날씨지만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들녘 사진은 보는 사람의 심신을 시원하게 만든다. 첫 수확을 신호로 여기저기서 다투어 벼 이삭이 솟아오를 거다. 아, 또 한 여름이 이울고 가을이 멀지 않았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