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식물을 접하면서

정민영 (한국화가)

2022-09-14     경남일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직업을 갖고 그 직업에 충실하면서 중·장년의 삶을 살아간다. 나 역시도 그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평생을 함께해 왔다. 한때 다른 직업을 꿈꾸어 본 적도 있었지만 취향과 적성이 맞지 않았는지 이내 마음을 접게 됐다.

이를테면 나는 그림만이 나를 위로하는 매개체가 되고 내 삶의 바탕이 됐다. 근자에 화실을 시내에서 도시 근교로 옮기고 난 후에 나의 삶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도시에서는 접하기가 쉽지 않은 다양한 식물들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이다. 집 뒤편 작은 정원에 자라고 있는 몇 그루의 나무들을 보면서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느끼게 됐다.

이 나무는 초봄에 연초록의 싹을 틔우더니 여름엔 무성한 잎으로 자라 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 나무 옆에 있는 텃밭에 몇몇 채소 씨를 뿌렸더니 곧 싹이 나고 자랐다. 이 채소는 몇 차례만 돌봤을 뿐인데 식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병충해가 발생했다. 텃밭 채소에 진딧물이 생긴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아내는 농약상에 가서 진딧물 퇴치약을 구입해 살포할 것을 권했다. 퇴치약을 구입해 설명서대로 약 한 스푼에 물 10ℓ를 타서 약을 쳤다. 웬걸, 효과가 없었다. 농도가 낮아서 그렇다고 판단하고 10ℓ의 물에 구입한 진딧물 퇴치액을 모두 넣어 텃밭 모든 식물과 나무에 뿌렸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다음날 사달이 났다. 채소는 물론 나뭇잎들이 검게 시들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채소와 나뭇잎에 물을 뿌리며 약물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지우려고 했지만 한번 뿌려진 약은 땅속까지도 흔적을 남겼다.

평생 처음으로 식물을 심고 키우는 일을 접하고 생긴 과오였다. 약을 뿌리고 3~4일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인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강도 높은 약을 살포해버린 탓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많다. 살면서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주변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가 반드시 옳은 것만이 아닐 것이기에,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한다. 주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과오나 시행착오를 줄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채소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말을 존중하며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