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83] 사랑 (김령 시인)

2022-09-22     경남일보
 


누군가 경고해주었다면

당신을 지나쳤을까



-김령 시인, ‘사랑’



누군가는 저 표지판을 보고 난간을 떠올렸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계단을 떠올렸을 것이다. 난간에서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시오, 발 헛디뎌 구를 수 있으니 계단을 주의하시오, 라는 정도로 읽었을 테다. 허나 시인의 사유는 일반적 시선을 건너뛴 어떤 지점에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은 서래에게 ‘핸드폰은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요.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이라고 말한다. 증거 인멸이란 암시성 경고인 셈이다. 서래는 해준의 생각과 관객의 시선 너머에서 기꺼이 ‘위험’을 무릅쓴다.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서래는 자신을 바다 깊이 파묻으며 해준에 대한 사랑을 완성한다. 그것은 서래가 운명적 자기애를 실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김령의 ‘사랑’도 누군가 경고해주었다 하더라도 당신을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어적 의미로 읽는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