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82)도토리나무 숲속에 와서 나는 가난하지 않다(김민율)

2022-09-25     경남일보
열지 않아도
드나들 수 있는 둥근 문이 있어
사방에 싹을 틔웠다

도토리나무 숲속에 와서 나는 가난하지 않다
벌써 한쪽 주머니가 불룩해져 있다

말들이 울창한 나무의 바깥은 가난하지
서로에게 줄 열매가 주머니 속에 없다는 것

소문만 무성한 주머니가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날에
산새가 푸드덕거리며 그늘을 물고 날아오른다

산새 울음소리에 맑은 귀를 대고
더 먼 침묵의 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발밑에 당신에게 줄 열매가 널려 있다
양쪽 주머니가 불룩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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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산책…… 일상적인 삶의 안락에 대해 생각합니다. 안락을 거부하는 마음과 방황하는 마음과 그런 시선이 환치돼 따뜻함을 바라보는 움직임을 생각합니다. 분주한 말들이 오가는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이 의탁할 곳은 진정 어디인지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거부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거부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열지 않아도 드나들 수 있는 둥근 문을 꿈꾸는 것이겠지요. 사방에 싹을 틔우는 삶을 바라는 것이겠지요. 말들이 울창한 나무의 바깥은 가난하고, 결핍이 더한 말을 낳게 하는 세상에는 서로에게 줄 어떤 열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문이 무성한 말주머니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봅니다. 그런 날에는 어두운 곳에서 자라는 말의 그늘을 물고 산새는 날아오릅니다. 산새울음이 들리면 비로소 맑아지는 귀. 더 먼 침묵의 미래는 결국 자신 안에서 자라는 세상이겠지요. 모든 소문을 끌고 산새가 날아가면, 우리는 불룩해진 양쪽 주머니를 가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에게 꺼내줄 열매가 가득한 세상을 만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