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 CEO경제포럼]김황식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신뢰 회복, 독일의 정치 배워야"

2022-10-16     임명진
전쟁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고 분단된 나라, 그럼에도 라인강의 기적, 한강의 기적 등 세계에서도 손꼽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나라.

독일과 대한민국은 놀라울 정도로 너무나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독일은 한국이 처한 좌우 이념 갈등, 과거사 문제, 핵 위협 등의 국가적 위기상황을 먼저 경험하며 그때마다 타협과 설득의 정치로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13일 오후7시 진주시 호텔동방에서 열린 ‘제1기 경남일보 CEO 경제포럼’ 제16차 강의의 주제는 바로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이다.

대법관 출신에 감사원 원장을 역임하고, 2010년부터 3년간 제41대 국무총리를 지낸 김황식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 강사로 나섰다.

김 이사장이 독일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독일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독일은 전범국이고 한국은 그 반대의 피해국이다.

김 이사장은 “패전국인 독일이 오늘날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과 배경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독일은 우리와 친숙한 국가이다. 파독 간호사, 광부를 보내 외화를 벌었다. 경제 개발에 나선 박정희 정부에 가장 먼저 차관을 제공하고, 고속도로 건설, 중공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조언한 나라다.

독일은 형식상 대통령이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연방 총리가 행사한다. 김 이사장은 “독일의 총리들은 정상국가로 복귀하고 국제신뢰를 얻기 위해 사죄와 반성의 정치를 했다. 경제 부흥을 이끌어내고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4개 나라를 설득해 통일까지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초대 총리인 콘라드 아데나워(1949~1963)는 독일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기민당 대표로 73세의 고령의 나이로 취임해 무려 14년간이나 재직했다. 전후 서독이 자유시장 경제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졌다. 소련의 스탈린이 제안한 ‘독일의 중립국 통일 방안’의 의도를 간파하고 국민을 설득해 무산시켰다.

2대 총리인 루드비히 에르하르트(1963~1966)는 아데나워 정권에서 14년간 경제장관을 역임하며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라인강의 기적 ’을 일으켰다. 독일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차관을 제공했다.

3대 총리인 쿠르트 키징거(1966~1969)는 기민당과 사민당의 최초의 대연정을 이끌어냈다. 키징거는 나치의 외교부 방송책임자로 부역한 사람이다. 부총리인 사민당의 대표인 브란트는 나치에 저항한 인사다. 우리로 보면 친일파와 독립군이 총리와 부총리로 연정을 한 것이다.

4대 총리인 빌리 브란트(1969~1974)는 사민당 최초로 총리에 올랐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패전의 대가로 폴란드에 할양한 독일의 영토를 국민의 반대를 설득해가며 포기했다.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소련과 동구권과 교류하는 동방정책으로 통일의 기초를 다졌다.

5대 총리인 헬무트 슈미트(1974~1982)는 독일 총리중 유일하게 재임 중 의회불신임으로 해임됐다. 1979년에 소련이 핵미사일을 국경에 배치하며 위협하자 슈미트 총리가 속한 사민당과 평화주의자들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수도 있다며 맞대응 하지 말자는 여론이 더 강했다.

하지만 슈미트 총리는 “무기의 균형이 맞지 않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무기는 대등하게 만들어 놓고 협상을 통해 페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핵무기 배치와 동시에 핵폐기 협상을 진행했다. 이 일로 자기가 소속된 사민당에 불신임을 받아 해임됐지만 미·소간에 협상을 통해 1987년 핵을 폐기했다.

6대 헬무트 콜(1982~1998) 총리는 독일 통일, 유럽연합(EU) 창설의 아버지로 통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미·영·프·소 각국 지도자와 긴밀한 교류를 통해 통일을 완성했다.

7대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1998~2005)는 통일의 후유증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중도좌파이면서도 노동시장 유연화, 연금 등 복지 축소 등의 과감한 개혁정책으로 위기를 탈출했다. 이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데나워의 스탈린 각서 제안 무효화, 슈미트 총리의 핵 배치,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 슈뢰더 총리의 개혁정책 등은 전부 국민과 지지층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이다. 그러나 독일 총리들은 국가의 미래 장래에 대한 비전 철학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시켰다.

김 이사장은 “역대 총리들의 타협과 설득의 정치가 독일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안정된 정치가 국가성장을 이끌어 간다는 점을 우리 정치인들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