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쌀

2022-10-20     경남일보
잎새를 떨궈낸 가지 사이로 주렁주렁 붉게 물든 감이 정겹다. 어머니가 생각나는 나훈아, 가슴에 품음직도 하다고 읊은 옛시인의 그 홍시에는 어머니에 대한 절절함이 묻어있다. 해질녘 산기슭 오두막집에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겨운 것도 그곳에 가족을 기다리며 밥짓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쌀은 어머니였다.

▶한여름 뙤악볕 마다않고 한 톨의 쌀이라도 더 거두겠다며 애쓰다 허리굽은 어머니, 비로소 흰 쌀밥지어 자식들 먹이며 환한 웃음을 보인 것도 홍시가 익어갈 이 즈음이다. 식량증산으로 비로소 어머니들은 쌀에서 해방됐지만 여전히 홍시가 익으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지난 시절 쌀값은 모든 물가의 기준이었다. 쌀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정부는 계획수매를 실시, 물가조절에 큰 도움을 받았다. 농민들도 안정된 쌀농사로 생활에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멜더스를 조롱하듯 쌀소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점차 물가조절기능을 상실했고 정부도 수매를 폐지했다. 이제는 쌀에 대한 애틋함도, 절대가치도 사라진채 쌀값은 옛날 그대로 이다.

▶최근 국회농수산위는 쌀 생산에 비축량을 연동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마련, 법사위와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이 다른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국가의 재정부담 등으로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쌀의 절대가치도 존중해야겠지만 기능을 상실한 수매제도의 현실적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쌀비축이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변옥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