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83)징검다리 건너기(이상현)

2022-10-30     경남일보

 

신발을 벗지 않고
물 위를 건너뛴다


 

내 그림자도
뛰어 넘는다

 


내가 젖지 않고
즐겁게 건널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이어놓은
디딤돌 몇 개


그 고마움이 물에 놓여
늘 젖어있기 때문이다


 



햇살이 좋은 날엔 빨래를 넙니다. 쏟아지는 햇빛을 그냥 두기 아깝기도 하고 혼자 놀게 하기엔 왠지 심심할 것 같아서지요. 비가 오면 창가에 두었던 화분을 밖으로 내어갑니다. 빗물을 흠뻑 먹은 화초가 싱싱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산들한 가을바람 맞으며 산책을 하고요, 산새 소리에 귀를 열어 정신을 바르게 해요. 쏟아질 듯 맑은 하늘에 눈을 두면서 눈동자에 하늘색이 담기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자연이 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으며 고마운 마음은 뒷전에 두고 말이지요. ‘징검다리 건너기’를 읽으며 왜 미안한 마음이 들까요. 자연에게 마냥 내놓으라고만 한 그동안의 나를 반성이라도 하는 걸까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인간의 이기심이 부끄럽네요. 촛불은 자신을 태워 주변을 밝히죠. 징검다리도 그러했네요. 늘 젖어있으면서 타인을 젖지 않게 하는 희생이 있었네요.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누군가는 편안함을 누리고 있었어요. 예리한 따뜻함으로 그림자까지 잘 건너게 해준 시인의 징검다리가 거기 있었어요. 제 몸 적시며 신발 벗지 않고도 물 위를 훌쩍 건너뛰게 한 고마움이 거기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