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84)망인 亡人(문태준)

2022-11-13     경남일보

관을 들어 그를 산속으로 옮긴 후 돌아와 집에 가만히 있었다

또 하나의 객지(客地)가 저문다

흰 종이에 떨구고 간 눈물자국 같은 흐릿한 빛이 사그라진다

 

 



 
타인을 읽는 슬픔은 무엇일까요. 생의 이면에 도사리는 비릿한 수직이 있다면 그것은 근원적인 상실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내 마음의 강줄기가 그 마음과 닿아 있고 생채기도 그러하니 나는 흐릿한 시선으로 화자의 눈물 자국을 들여다보아야 하겠어요. “관을 들어 그를 산속으로 옮긴 후 돌아와 집에 가만히 있”는 화자는 나이면서 세상의 많은 이들이겠지요. 삶과 죽음이 관통하는 지점에 놓인 현실이 무겁네요. 고통보다 더한 진실한 고통은 그저 ‘가만히’에 앉혀놓아야 하는 일일까요. 그것이 유일한 위안이고 위무일까요. 작품에 깊숙이 들어가 봅니다. 내 마음이 아프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읽을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는 의미로 받아주면 좋겠어요. 그리한다고 슬픔도 힘이 된다는 뛰어난 역설은 함부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을 뿐이에요. 부사어 ‘가만히’에 기대어 나를 통째 맡겨봅니다. “관을 들어 그를 산속으로 옮긴 후” 집에 돌아온 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 일만 할 줄 알 뿐, 여기서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흐릿한 빛이 사그라지면서 또 하나의 객지가 저무는 게 선명해서 서러운 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