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87]

두꺼비씨름 똥기다

2022-11-23     경남일보
들겨울(11월)도 스무날이 넘게 흘렀고 첫 눈이 내린다는 좀눈(소설)도 지났는데 날씨가 포근하다 못해 낮에는 덥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여느 해와 다르니 좀 얼떨떨합니다. 날씨가 이래도 되나 싶어서 말이죠. 때를 잃고 핀 꽃들이 한 둘이 아니고 지난여름 탐스러운 해바라기가 피었던 자리에서 새롭게 해바라기가 자라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곧 제철에 맞는 날씨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날살이에서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 몇 가지 알려드립니다.

요즘 카타르에서 온 누리 공차기 잔치라고 하는 월드컵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쪽이 뚜렷한 겨루기도 있지만 엎치락뒤치락 주고받기를 하면서 판가름이 나지 않는 겨루기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끝내 이기고 지는 것이 가려지지 않는 다툼이나 겨룸을 빗대어 나타내는 말로 ‘두꺼비씨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두꺼비끼리 싸우는 것을 본 사람은 바로 알 수 있는 말인데 그걸 못 본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두꺼비들이 겨루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본디 두꺼비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두 마리가 힘을 겨룰 때도 마찬가지지요. 서로 밀기도 하고 밀리기도 하는데 한참을 보고 있어도 누가 이기는지 누가 지는지를 가리기 쉽지 않답니다. 그래서 이기고 지는 게 가려지지 않는 겨루기를 빗대어 나타내는 말이 된 것이라는 바로 알 수 있었지요. ‘막상막하 또는 난형난제, 백중지세, 용호상박’과 같은 말을 듣거나 보시거든 ‘두꺼비씨름’을 떠올려 써 보시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알려 드릴 말은 ‘똥기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일을 다른 사람이 알아챌 수 있도록 슬그머니 말해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많이 쓰는 ‘힌트를 주다’ 또는 ‘암시를 주다’를 써야 할 때 갈음해 쓸 수 있는 말이랍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것을 바로 알려 주지 않고 몇 글자인지 첫소리는 무엇인지를 알려 주곤 할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과 즐겨 하는 놀이인 ‘토박이말 딱지놀이’를 하면서 자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토박이말 딱지놀이 첫걸음은 술래가 불러주는 토박이말을 먼저 주워가는 것이고 둘째걸음이 읽어주는 뜻이나 실마리를 듣고 맞는 토박이말을 찾아 주워가는 거랍니다. 그 둘째걸음에서 아이들이 읽어주는 실마리가 그 낱말이 모두 몇 글자인지 첫소리는 무엇인지 따위인데 그렇게 곧바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넌지시 알게 해 주는 것을 ‘똥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잘 아는 것이나 먼저 깨닫게 된 것을 곧바로 알려주거나 가르치기보다 살짝 똥겨 주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우러러 보게 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똥기다’라는 말도 쓸 일이 많은 말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