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91] 명예퇴직 (임창연 시인)

2022-11-24     경남일보


칼자국

온몸에 남긴 채



횟집 분리수거 봉투 곁

버려진 이력서 한 장



-임창연 시인 ‘명예퇴직’



‘횟집 분리수거 봉투 곁’에 놓인 것으로 보아 음식점의 도마로 쓰였을 나무다. 저 뭉툭한 도마가 있던 곳이 횟집이었을지, 닭집이었을지는 중요치 않다. 기간은 알 수 없으나 오랜 시간 사용되었다는 것은 칼자국 무성한 도마의 무늬가 말하고 있다. 나무의 이력 또한 알 수 없다. 어디서 나고 자라 어느 곳을 거쳐 저 모습의 도마가 되었는지 나이테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수많은 시간을 떠돌았을 것이라는 점은 나무토막의 상태를 통해 알 뿐이다. 사람 또한 많은 생활이 쌓인 다음에야 더는 이력을 만들지 않게 되는 때가 온다. 우리는 그것을 퇴직이라 한다. 그런데 가장 명예스러운 퇴직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저렇게 분리수거 되듯 일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나는 느낌이 가득한데도 말이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