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변하는 ‘과거’

정재모 (논설위원)

2022-12-01     경남일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H.카의 유명한 명제는 좀 애매하다. 우선 말뜻 풀이조차도 각양각색으로 다양한 거다. 무엇보다 역사가 ‘사실’인지 ‘사실의 해석’인지부터 헷갈린다. 과거의 사실이라는 게 통설인 듯하지만 사실 해석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역사가 단순한 사실이라면 과거는 마땅히 고정되고 미래는 유동적일 게다.

▶역사가 과거 사실의 해석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과거를 전혀 알 길이 없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신도 바꿀 수 없다지만 역사 해석은 수시로 바뀌는 걸 우리는 수도 없이 보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숱한 왕조의 충신이 하루아침에 역적이 되고 역신이 영웅되는 일들이 반복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최근 형편만 보더라도 정권 바뀔 때마다 선악은 수시로 자리바꿈하고 있다. 이명박 시대의 4대강 보는 정부 교체 두 번만에 몹쓸 사업이 되어 들인 돈도 안 아까운 듯 미련없이 헐거나 열어버렸다. 북녘과의 친소관계 평가는 정권 바뀔 때마다 냉온탕을 넘나들었다. 직전 정권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이는 작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월성 1호기 원전폐쇄 정책에 관계된 전 청와대 수석보좌관과 과학기술보좌관도 압수수색을 받았다. 직전 정부의 ‘충신’들이 잇따라 불법의 혐의 앞에 서게 된 거다. 권부(權府) 인사들의 이같은 위상변화를 보면서 “미래는 정확히 예측할 수 있어도 과거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구 소련의 농담 같은 격언이 생각난다. 새삼 역사가 두려운 아침이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