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1558년 4월 지리산, 남명 선생의 진짓상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2022-12-01     경남일보


진주는 옳을 의(義)를 숭상해 왔다. 기질이다. 그 중심에는 진주 출신 대학자 남명 조식이 있다. 남명 선생은 57세가 되던 해인 1558년(명종 13) 음력 4월 11일부터 25일까지 지리산을 유람했다. 사천에서 배를 타고 섬진강을 거슬러 하동 쌍계사를 거쳐 지리산에 올랐다. 산수를 바라보며 옛사람을 생각하고 시대를 생각했다(看山看水 看人看世). 진주 목사, 고성 현감 등 진주목 수령들도 함께했다. 악양과 화개의 아전들이 인사 왔고 진주 관리들도 문안했다. 절에서는 중이 산나물과 과일로 접대했으며 사천 현감은 소를 잡아 잔치를 열었다. 4월 14일 남명은 자형과 함께 사천 구암리에 위치한 강이(剛而) 이정(1512~1571)의 집에서 묵는다. 청주 목사였던 강이가 일행을 위해 전도면(剪刀麵)·예락제·하어회(河魚膾)·백황단자·청단유고병 등을 마련했다. 전도면은 칼로 자른 국수인 칼국수다. 동시대에 편찬된 고조리서 ‘수운잡방’에는 소고기를 국수처럼 얇게 썰어 밀가루를 입히고 된장국에 끓여내는 육면이 있었다. 예락제는 감주라고도 하는 단술이다. 되직한 밥에 누룩을 넣어 삭힌다. 발효가 완전히 일어나지 않아 알코올 도수가 낮으며 단맛이 난다. 엿기름으로 만드는 식혜와는 다른 음식이다. 영조의 삼엄했던 금주령 기간에는 모든 술을 단술로 대체했다. 종묘제례나 사신 접대에도 단술이었다. 단술은 궁중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국민주였다. 남명의 진짓상에는 민물고기회인 하어회도 올랐다. 찹쌀경단을 두 가지 빛깔로 빚어 삶은 백황단자도 있었다. 황색 단자는 쌀가루에 치자 물을 들여 빚는다. 당대에는 치자 물로 황반을 짓기도 했다. 치자는 열을 내리고 염증을 없애주며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한다. 단자에 밤가루나 팥가루, 유자채, 밤채, 대추채 같은 고명을 붙여 만든다.

청단유고병은 청명절에 먹는 중국의 절기식이다. 중국에서는 떡반죽에 돼지기름을 넣고 쪄낼 때도 기름을 바른다. 그래서 기름 유(油)자가 붙는다. 칼국수를 토장국에 끓인 국수전골, 생선회, 서너 가지 떡과 단술을 곁들인 선비의 밥상은 조촐하면서도 구색을 갖춘 느낌이다. 남명은 지리산에서 세 사람을 마음에 새긴다. 한유한과 정여창, 조지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신념과 실천으로 맞선 인물들이다. “책을 덮고 현실로 나아가라” 했던 남명 조식. 칼을 차고 방울을 흔들어 스스로를 깨우던 그의 발자국이 눈 덮인 지리산 어디에선가 오늘의 진주를 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