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월드컵과 ‘고블린 모드’

한중기 (논설위원)

2022-12-07     경남일보
세계 최강 브라질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국의 월드컵은 아쉽게도 ‘조기종영’했으나, 제22회 카타르 월드컵은 많은 의미를 남겼다. 사상 첫 동계경기에 중동 최초 월드컵, 32개국 본선 진출 마지막대회. 한국 일본 사우디 등 ‘언더독의 반란’도 의미를 한층 더했지만, 지구촌 사람들의 ‘고블린 모드’를 흔들어 깨운 점이 무엇보다 뜻 깊다.

▶대유행병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회화를 피해 ‘고블린 모드Goblin Mode·도깨비 모드)’를 선택했다. 강제격리 여파로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정신상태가 지속되면서 방역규제가 완화돼도 일상 회귀를 원치 않는 현상이 ‘고블린 모드’를 주목하게 했다. 나태하거나 지저분하고 탐욕스런 이미지와도 연상되는 현상이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고블린 모드’를 선정했다. 후보에는 메타버스(metaverse), #아이스탠드위드(#IStandWith:‘무엇을 지지한다’는 의미)도 올랐다. 세 단어 모두 최근의 사회상을 담고 있다. ‘고블린 모드’는 2009년 처음 등장했지만 팬데믹 이후에도 일상복귀 거부 사례가 생기면서 다시 주목받는 단어가 됐다.

▶다행히도 ‘고블린 모드에’ 빠진 사람들이 월드컵을 통해 서서히 일상을 되찾는 모양새다.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모처럼 펼치는 월드컵 응원 열기에 전 세계가 후끈 달아오르면서 지구촌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염병이 아직 완전 종식되지 않았고, 러시아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월드컵의 열기를 받아 ‘사회화 모드’로의 환원을 기대해 본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