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89]

급출발⇒갑작달리기, 급제동⇒갑작멈추기

2022-12-22     경남일보
엊그제 어설픈 눈이 내리고 난 뒤 길이 얼어서 미끄러진 분들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제 가까이 계신 분도 일터로 오는 길에 미끄러졌지만 크게 부서지거나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갑작추위가 왔었더라면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갑작추위’는 ‘한파’를 다듬은 말로 몇 해 앞에 ‘갑작바람(돌풍)’과 함께 살려 쓰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갑작-’이 들어간 말로 북쪽에서 쓰는 말 몇 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갑작-’이 들어간 말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어떤 말이 떠오르실까요? 제 둘레 사람한테 물으니 하나도 떠오르지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갑작-’이 들어간 말을 듣거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우리와 달리 북쪽에는 ‘갑작-’이 들어간 말이 더 있습니다.

먼저 ‘갑자기 내리는 비’를 ‘갑작비’라고 하고 ‘갑자기 꾸며낸 수나 방법’을 ‘갑작수’라고 한답니다. 화학에서 ‘액체가 폭발하듯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것’을 우리는 ‘튐’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돌연비등’이라고 하다가 ‘갑작끓음’으로 다듬어 쓰고 있다고 합니다. ‘돌입전류’라는 말도 ‘갑작흐름’으로 다듬어 쓰고 있고 우리가 ‘급출발’이라고 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갑작달리기’라고 한답니다.

이런 말들을 보니까 앞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 ‘갑작사랑’, ‘갑작죽음’도 생각이 납니다. ‘돌연사’를 북쪽에서 ‘갑작죽음’이라고 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돌’ 자가 ‘갑자기 돌(突)’짜 라는 것을 알려드렸었지요. ‘돌연비등(突然沸騰)’, ‘돌입전류(突入電流)’에 있는 ‘돌’이 ‘갑자기 돌(突)’이기 때문에 ‘갑작끓음’, ‘갑작흐름’으로 다듬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겨레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지 일흔 해가 훨씬 넘은 오늘날 남과 북이 쓰는 말이 많이 달라져서 큰일이라고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처음 들어도 바로 뜻을 알 수 있는 말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더 나아가 이런 말을 보니 ‘갑작-’이 들어간 새로운 말을 얼마든지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갑작비’가 있으면 ‘갑작눈’도 있을 수 있고 ‘갑작달리기’가 있으면 ‘갑작멈추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이 자주 보시거나 들으셨을 “급출발, 급제동 금지”라는 말도 좀 더 쉽게 바꿀 수가 있습니다. ‘급출발’을 ‘갑작달리기’라고 하고 ‘급제동’도 ‘갑작멈추기’라고 하면 “급출발 급제동 금지”는 “갑작달리기, 갑작멈추기 하지 말기”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갑작-’이 들어간 말들을 많이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 있을 때 ‘갑작-’을 넣어 새로운 말을 많이 만들어 써 보시기 바랍니다.

㈔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