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95] 찻사발 (김혜천 시인)

2022-12-22     경남일보
찻사발 (김혜천 시인)


 


만들지 않았는데 빚어졌네

낳아 기르고 다시 소멸을 품은

한 줌의 흙

불이다

바람이다



ㅡ김혜천 시인, ‘찻사발’



일정량의 물을 채우는 사람, 한 방향으로만 차를 따르는 사람, 저 찻사발을 무던히도 오래 사용한 사람, 사발에서 찻사발로 사용한 사람이 보인다. ‘한 줌의 흙’이 사발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사발이 빚어졌다면, 사발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규정해 놓았다. 쓰임과 사용이 융합되어 찻사발과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이때는 굳이 흙, 불, 바람의 연금술도 필요없다.

깊어진 것들은 외형의 그윽함을 갖기 마련이다. 그윽함에서는 향기가 나기 마련이다. 차는 사람이 되고 사람은 차가 된다. 제다하는 사람에 따라 차향이 다른 이유이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