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R의 공포’와 ‘좋은 위기’

2023-01-08     이홍구
‘R의 공포’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리세션(Recession·경기침체)의 맨앞 철자 ‘R’을 따서 만든 이 말은 연초 세계경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주요 기관과 전문가들은 앞다퉈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업의 투자·고용 축소와 고물가, 고금리, 가계부채 증가, 자산가치 하락 등 암울한 뉴스만 들려온다.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가 사회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2.7%로 내다봤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전망은 2.4%로, 더 어둡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긴축 기조를 이끄는 강경 매파도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69% 급감했다. 반도체 수출액은 5개월 연속 감소세다. 한국 경제의 원동력인 수출도 부진의 늪에 빠졌다. 정부는 새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하향 조정했다. 수출도 4.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경제의 ‘대위협 시대’가 도래했다”는 우울한 경고가 울려퍼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윈스턴 처칠은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위기를 두려워 하지만 말고 한단계 도약의 기회로 삼으라는 잔인하지만 현명한 조언이다. 생존에 성공하고 위기에 잘 대응한 개인과 기업, 국가만 기회를 잡을 수 있다. 6·25 전쟁, 1·2차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낸 한국경제 75년사는 위기와 극복의 대장정이었다. 위대한 개인이 성취한 도전과 응전의 개척사였다.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들지만 낙관론자는 비행기를 만든다. 2023년 새해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은 또 하나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이홍구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