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 TV를 켜놓고

변진희 진주갈전초등학교 교장

2023-01-16     경남일보

 

친정식구 서넛이 모이는 단체 톡방에 언니가 소식을 물었다. “나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TV를 켜는데 다른 집들은 어때?” “어, 나도 그렇는데” 라고 답한 뒤 무심코 했던 나의 행동을 언니도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나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으레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TV를 켜고 저녁을 준비한다. 보지도 않을 TV를 굳이 켜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식들이 다 커서 떠나버린 빈 둥지에 아이 소리가 그리워서일까. 적막함이 싫어서일까, 종일 타인에게 맞춰 살다가 지친 직장인에게 TV는 알아서 묻고 답하니 편해서일까?

텔레비전은 구십을 넘으신 친정 엄마의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기도 하다. 퇴근 후 드리는 안부 전화에 울 엄니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아이고 걱정 마라, 외롭지 않다. 사람 여러 명하고 있다. 테레비 안에 사람 쌨다.” 당신은 사람 소리가 그리워서 TV를 켜놓고 계실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 TV 뉴스에서 ‘알파 세대’가 온다고 했다. X세대, Y세대, M세대, N세대, Z세대, MZ세대…. 이제 더 이상 열거할 알파벳이 없어서 다시 알파로 지칭한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인공지능 AI와 만나는 세대를 말하는 알파세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TV가 아니라 혼자서 가지고 노는 똑똑한 기기를 만나는 세대, 그들에게 더 이상 뜨끈한 아랫목 이야기나 가족이 함께 모여 TV를 보는 풍경은 없을 것인가?

코로나19가 시작됐던 2021년 그해, 텔레비전 판매율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 집도 20년 넘게 사용해 왔던 TV가 하필이면 그 즈음에 고장 나서 큰맘 먹고 최신형 대형 UHD TV로 바꿨다. 그런데 TV를 선택하고 새로 설치하는 며칠 동안 TV가 없어 그 허전함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았다. ‘TV가 언제부터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 됐지?’ 텔레비전 없던 어린 시절에는 온 식구가 온돌방에 깔아놓은 이불에 발 함께 넣고 오순도순 사람 냄새 풍기며 지냈었는데 말이다.

베이비 붐 세대로 분류되는 나는 지친 하루를 보상 받는 휴식의 명분으로 보지도 않을 TV를 굳이 틀어놓는다.

TV는 혼자서 잘도 떠든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세상사 희로애락을 다 짊어지고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나는 그 TV를 등지고 누워서 알파세대의 전유물로 상징되는 스마트폰 유튜브로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가수 임영웅의 노래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