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어디 매화 핀 데 없습데까

정재모 논설위원

2023-01-26     경남일보
매화는 별칭이 많다. 봄의 전령처럼 가장 먼저 피는 꽃이란 뜻으로 화형(花兄), 화괴(花魁), 장원화(壯元花)가 있다. 모진 겨울 이기고 피는 꽃이기에 설중군자(雪中君子), 세외가인(世外佳人), 빙기옥골(氷飢玉骨), 화어사(花御史), 청객(淸客)으로도 부른다. 양화소록에는 동청수(冬靑樹 사철나무)에 매화나무를 접붙이면 쇄묵매(灑墨梅)를 얻는다고 했다. 검은 매화란 뜻인데, 그런 꽃도 있나 보다.

▶난초·국화·대와 함께 사군자라 하고 소나무·대와 아우르면 세한삼우다. 조선후기 유박이 쓴 화암수록(花庵隨錄)엔 기우(奇友)라고 했다. 한겨울의 기특한 벗이란 거다. 하지만 이름이 아무런들 매화 피면 봄날은 슬며시 따르는 법. 요즘 이 혹한에 생뚱맞게 매화를 불러내 보는 이유다.

▶설 연휴 지나면서 몰아닥친 맹추위, 주말을 고비로 숙질 거란다. 다하지 못해 성난 듯 매섭다가 곧 꺾일 거라니 추위가 매향을 맡았는가. 어디엔가 피었을까.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에 부딪치니/ 찬 기운 새어들어 잠든 매화 침노한다/ 아무리 얼우려 한들 봄뜻이야 앗을소냐’(안민영). 옛글이 허랑치 않다면 꽃은 분명 피었으리라.

▶지난주 그믐녘에 자주 다니는 산길에서 맺힌 봉오리를 봤다. 그새 하마 순백의 꽃잎 펼쳤을지 모르겠다. 이맘때면 곳곳에서 다투어 매화 소식 들려 올법한데 연휴라서 화신도 쉬었는가. 신문 방송에선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남은 추위 다하기 전에 어서 피어야 저 숱한 이름값을 하련만…. ‘어디 매화 핀 데 없습데까?’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