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88)구부러진 길(이준관)

2023-01-29     경남일보
구부러진 길(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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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산책…… 길은 인생의 여정이며 삶이며 생을 통째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살면서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죠. 그럼에도 우리가 원하는 길은 쉽게 찾아오질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함부로 낙심하지 않기로 해요. 구부러진 길을 걸으면서 온 산을 품고 온 마을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배우니까요.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많은 것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걸 알아가니까요. 구부러진 길모퉁이에서 민들레를 만나고 감자 심는 사람을 만나고 울타리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니 이보다 다정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구부러진 길은 그곳을 완전히 돌아 나오기까지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에 또한 희망을 꿈꿀 수도 있는 거고요. 이렇게 작은 기대만으로 가슴 뛰는 소박한 사람들이 구부러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탄탄대로도 좋겠지만 굽은 길의 느린 속도를 따라가는 삶도 나쁠 건 없겠어요. 주변을 돌보며 사는 삶은 꽤 괜찮은 일이지 싶으니까요. 무엇보다 사람 세상에서의 굽은 길은 경험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기도 했을 테니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