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시나리오

정승재 논설위원

2023-02-08     경남일보
어느 영화상 수상식에서 큰 상을 한 배우는 소감으로 “잘 차려진 밥상을 잘 먹어주면 되었다”고 하면서 영화를 같이 만든 스탭들에게 그 공로를 돌렸다. 겸양으로 팬들의 칭송이 따랐다. 주어진 각본, 시나리오를 몸 동작과 함께 완벽하게 구현한 결과물에 대한 보상이다. 그 또한 연습되었을 것이다.

▶방송매체를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은 짜여진 시나리오로부터 만들어진다. 다소의 ‘애드 립’ 등 ‘리얼리티’로 덧칠되지만 대부분은 비정규직 작가들의 대본에서 완성된다. 정규직 PD가 철저히 그들과 그것들을 감독하고 관리한다. 그 애드 립도 인기가 보장됐거나 원로급 유명인사가 아니면 허용되지 않는다.

▶대중매체만 시나리오가 있는 게 아니다. 공공 영역의 회의결사체 기구는 거의 다 있다. 국회도 예외가 아니다. 상당수 입법고시를 통해 임용된 사무관 혹은 차상위의 입법심의관이 “지금부터~있겠습니다”와 같은 단순 시나리오를 쓰는 게 고유 직무의 일부분이다.

▶연초에 광역 혹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주민과의 대화’ 이름의 간담회나 토론회가 많다. 질문도 답도 정해져 있다. 리얼리티를 가장하는 기교를 부리지만 어설프다. 행정의 고질병인 현시(顯示)주의. ‘보여주기’ 만연이 까닭의 하나다. 뜬금없는 질문과 완벽될 수 없는 답변, 거창해 보이는 회의 용어를 모르면 어떤가? 문제 없다. 민도도 행정도 시나리오에 집착할 때가 지났다. 꾸밈보다 소통과 사안의 진정성이 먼저다.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성이 담보된 대한민국에 산다.
 
정승재 논설위원